Advice of Hawking

http://calnewport.com/blog/2017/01/11/stephen-hawkings-productive-laziness

“Bruce, here’s some advice: The problem with physics is that most of the days we don’t make any major headway (on our projects). That’s why you should do other stuff: listen to music, meet good friends. There’s one exception to this rule: If you find a solution for a given problem, you work 24 hours a day and forget everything else. Until the problem is solved in its entir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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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시간씩 논문 쓰기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

당신은 새로 임용된 교수다. 그런데 연구할 일은 무지 많고, 강의는 많고, 회의도 많고, 그런데 논문 쓸 시간은 없고, 따라서 논문은 안 나오고..그러한가? 최근 Science 에 실린 한 기사가 힌트가 될수도 있다.

The 1-hour workday 

Jeffrey J. McDonnell

내가 조교수이던 시절, 난 항상 버거운 상태였다. 강의도 해야되고, 학교의 새로운 동료들과도 관계를 잘 유지해야 했고, 새 실험실을 구성해야 했고, 집에는 돌볼 애까지 있었다. 물론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더불어 학회활동도 해야 했고, 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거의 미친사람처럼 일을 했건만 논문 편수로 측정되는 나의 ‘생산성’ 은 매우 미약했다. 일과중에는 도저히 방해받지 않고 논문을 쓸 시간을 찾기 힘들었다. 다른 일을 한참 하다가 막상 논문을 쓸 시간이 났을때는 논문을 쓰는데 필요한 워밍업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논문 쓰는데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처음에 난 학계 연구자라면 누구나 다 이런줄 알았다. 그러나 몇 년 지나서 보니 몇명의 선배교수들을 보니 매우 주기적으로 논문을 내고 있고 항상 작성중인 논문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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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on academic productivity

orgtheory.net

I’ve had the opportunity to meet a number of scholars who, by any conventional standard, are very productive and they aren’t stuffing the CV with obscure publications. And I’ve asked them, how do you manage to pull this off? Here are the answers that I get:

  • Team work: Almost every star I’ve asked works in large groups. If you look at the CV’s, they have tons of co-authors.
  • Division of Labor: A lot of them have told me that they are very good at assigning tasks. One of them told me he *never* does fund raising. He works with another prof who in a medical school who has access to funds.
  • Shamelessness: Most academics sulk over rejections. These folks don’t. Soon as a paper gets rejected, they send it out ASAP.
  • Recognizing diminishing marginal returns: A paper will improve between first and second drafts. These folks understand that obsession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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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사유

 

그는 2년 전 가평으로 이사를 갔다. 주중 3~4일을 혼자 산속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것이 혼자 있기, 혼자 생각하기”라 했다. “한국인들은 제발 모여 있지 말고 고독을 훈련해야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만 또 다른 자신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죠. 그게 카리스마죠. 특히 리더라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하루 5시간을 묵상했어요. 생각의 힘은 고독에서 나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9&aid=0003640978&sid1=001&lfrom=facebook

 

하이디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앨빈 토플러가 아내 하이디 토플러(원이름 아델라이데 엘리자베스 패럴)를 만난 건 1948년 뉴욕대(NYU) 앞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였다. 앨빈이 20세, 하이디가 19세 때였다. 하이디는 NYU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으며 앨빈 역시 NYU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앨빈은 폴란드계 이민출신이었고 하이디는 독일계였다. 서구 이민자 출신인 두 사람은 특히 미국 사회의 가치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다. 당시 뉴욕은 급진 좌파가 득세하는 분위기였다. 2차대전 유럽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군인들은 대부분 좌파적 생각에 매몰됐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두 사람도 분위기에 휩쓸렸다.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빈과 하이디는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한 다음 직접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공장지대로 이주했다. 앨빈은 그곳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하이디는 GE 공장에서 전구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노동조합 사무직원으로도 일했다. 5년간 공장에서 노동을 체험한 이들은 사회주의의 모순과 노동운동의 한계를 느꼈다. 공장에서 나와 앨빈은 신문기자로 일하고 하이디는 비즈니스 관련 사설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하이디는 앨빈이 포천지에 글을 쓸 때부터 앨빈의 조력자요, 멘토이자 코치였다. 앨빈은 생전의 인터뷰에서 “주간에 글을 쓰면 저녁에 하이디가 그 글을 읽었고 우리는 밤늦게 토론했다. 때로는 논쟁을 하기도 했다. 하이디는 애초부터 나의 글쓰기 작업의 한 부분이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특히 하이디의 도서관 사서 경험은 남편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미래쇼크》나 《제3의 물결》 등 앨빈의 초기 저작물은 단독 저자 형태로 출간됐다. 하이디는 당시 서적에 이름을 같이 내야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의 충고를 받은 뒤 그들은 공동 저자로 책을 출간했다. 앨빈과 하이디가 공동으로 참여한 첫 작품은 1993년에 집필한 《전쟁과 반전쟁》이었다. 이 책은 아이디어뿐 아니라 집필에도 하이디가 많이 간여했다고 한다.

이후 출간된 《부의 미래》나 《불황을 넘어서》 등 각종 저서는 공동 저자로 나왔다. 하이디도 본격적인 미래학자로 활약을 펼치게 된 것이다. 하이디는 남편의 강연에 꼭 참석해 현장 멘토 역할을 했다. 앨빈은 강연 내내 하이디의 눈치를 살폈다는 일화도 있다. 남편과 아내가 한 가지 주제로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부부라면. 같이 에너지를 공급받고 공급해주면서 협업하는게 참 이상적인것 같다.